스크린 너머의 친구에게,


너도 한 번쯤은 외국어로 이야기 나눌 때 생긴 말실수 들로 다른 사람을 웃기거나, 당황시키거나 화나게 한 적 있을 거야. 난 한국어 모국어 사용자이고 한국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웠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꽤 겪었어. 한번은 “익명" 투표 대신 “만장일치” 투표를 제안했었고, 종종 “시트"와 “똥" 발음을 구분하지 못해.
내가 부끄러워야만 할까? 하지만 “옳은" 언어라는게 존재하나? 나한테 언어파괴자라는 선고를 내릴 권한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나?  고백하건데, “부끄러웠었고 그렇게 믿었어.” 적어도 스크린 너머의 나라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곳, 스크린 너머의 나라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디지털 가상 공간이야. 


내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모든 프랍주시쉬* 사람들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었어. 그리고 내가  현실 세계 출신이라는걸 알게 되자,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도시 전설**인 “말실수”를 경험해 본 적 있냐고 물었어. 내 일화들을 듣고 한 프랍주시쉬 사람이 나섰어. 그리고는 “내가 쓰는 단어의 뜻은 내가 정해!”라고 경멸에 찬 목소리로 외쳤어. 
우리 프랍주시쉬들은 정해진 언어 규칙에 복종하지 않아. 대신, 우리가 쓸 말을 직접 만들지. 누구든지 새로운 글쓰기나 말하기 방식을 프랍주쉬시 사전***에 등록할 수 있어. 등록된 순간부터 모두 그렇게 이야기 나누고, 읽고 시를 짓지.


그게 내가 이 초대편지를 쓰는 이유야. 모든 프랍주쉬시들을 대신해, 네가 이곳에 와, 함께 언어를 만들고 즐기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 프랍주쉬시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우린 인종, 정치 성향, MBTI 타입, 반려동물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를 환영해. 오히려 그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편이야. 머지않아 너를 아래의 링크에서 만나길 바라며 편지를 줄여.
https://hub.xpub.nl/sandbot/~eunalee/flask/


총총

스크린 너머 나라에서 너의 친구 은아가.

* Frabjous (루이스 캐럴이 만든 “맑은(fair), 기막히게 멋진(Fabulous), 아주 기뻐하는 (joyous)” 들의 합성어)와 ish (“...성격의”를 의미하는 어미)의 합성어
** 스크린 너머 나라의 스테디셀러인 “도시 전설 모음집 제1권"의 첫 장은 다른 나라 언어들에 관한 것이다. “옳은" 혹은 “틀린" 언어가 프랍주쉬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실수", “피진어", “빨간 밑줄", “그래머리"같은 단어는 프랍주쉬시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 이 책은 링바인딩으로 제본되었다. 프랍주쉬시들이 쉬지않고 페이지를 더하는 통에 담당 인쇄소에서 무선제본이나 실제본 주문을 금지시켜 놓았다.